딸을 잃은 고통은 14년의 세월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았다. 백화점 문화센터에 가서 스포츠댄스를 배우자고 엄마 손을 이끌던 딸. 이번 기회에 아빠까지 춤 좀 배우라며 웃으며 아빠 목에 매달리던 딸. 판사나 검사가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전 국무장관처럼 국제무대에서 큰 꿈을 펼쳐보고 싶다며 이화여대 법대에 입학했다던 스물두살의 앳된 여대생.
이종사촌 오빠의 장모이자 영남제분 류원기(69) 회장의 아내 윤길자(71)씨가 자신의 사위와의 외도를 의심해 살인청부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지혜양은 부모에게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.
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혜양의 어머니 설모(64)씨에게 14년의 기나긴 시간은 딸을 잊기는 커녕 그리움만 짙어가는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. 딸을 생각하며 술에 의지하게 됐고 밥도 2-3일씩 거른 설씨는 사망 당시 몸무게가 38kg에 불과했다. 165cm의 키에 비하면 턱없이 가벼운 체중이었다.
딸을 그리워하던 설씨가 한줌의 재가 돼 하남시 검단산 아래 마루공원 납골당에 봉안된 23일 오후.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설씨의 남편이자 지혜양의 아버지인 하모(70)씨를 하남시 자택에서 어렵게 만났다.